미완의 몽상
BRACER
어둠 속의 밝은 꽃
그때는 부족들의 깃발이 회색 먼지로 뒤덮여 색을 잃어가던 시절이었다. 반은 인간인 자가 금이 간 밝은 고리를 든 채 왕좌 앞에 서서, 폭군의 찬란한 권력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혹독한 통치 때문에 사람들은 뿌리의 진흙과 모닥불 또는 숲의 그림자 속에서, 깊은 밤 장막의 사자와 멀리 떠난 선조 그리고 최초의 인간신이 남긴 훈계를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고대의 어둠이 백만 개의 어둠을 삼키는 순간이 언젠가 도래할 것이다. 고대 두루마리에 남은 핏자국이 희미해질지언정 피비린내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붉은 눈동자의 소년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깊숙이 드리울 무렵, 셀 수 없이 많은 고난을 넘어, 물처럼 흐르는 빛의 왕국에서 금지된 성의 언덕으로 돌아왔다. 그가 부유하는 정원에 발을 들였을 때 귓가에 허리 굽은 노파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넝쿨이 뒤엉킨 먼 호수에서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 마련이지」 「찾으시게. 이 거대 괴수의 해골이 쌓여 죽음의 냄새가 나는 땅에서」 「추운 새벽녘에 자기 몸을 불사를 진정한 의로운 사람을 말일세」 「그리고 그들의 열망, 원한, 탐욕과 야심을 저버리지 말 것을 명심하게」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그들의 눈빛을 저버리지 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어두워진 깃털 장식을 손에 쥔 소녀였다. 그녀는 비단날개새처럼 소년을 위해 높은 막사 사이로 정보를 수소문하고 다녔다. 그다음으로 쌍둥이 영웅이 찾아왔다. 칼보다 날카로운 혀를 가진 형과 폭군에게 고문을 당한 동생이었다. 붉은 눈동자의 소년이 용들을 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과묵한 용사 역시 힘을 보태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성의 구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해」 「손바닥 위의 장치를 갖고 놀 듯이, 능숙하게 밝은 길과 어두운 통로를 가리킬 수 있는 사람 말이야」 붉은 눈동자의 소년이 말하자 긴 정적이 흘렀고, 평소에 과묵하지만 믿음직스러운 영웅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 인간과 용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살기를 바라던 그 용사는 소문을 떠올리곤 한 장인의 이름을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