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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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편지
고3 3반, 백수에게 요즘 어때? 백수, 난 잘 지내. 네게 약속했던 초상화가 어제 완성됐다는 걸 알려주려고 이 편지를 써. 알다시피 내가 회화는 너보다 한참 못하는데, 왜 자화상 과제를 내게 맡긴 건지 정말 모르겠어…. 이걸로는 절대 해인 선생님을 속일 수 없을 거야——널 탓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은, 이미 집에 가서 쉬고 있으니 과제 같은 사소한 일은 신경 쓰지 말라는 거야. 내가 대신 제출해 줄게. 나더러 「친절한 상청이」라고 그랬잖아? 해인 선생님은 자화상의 본질이 진실함이라고 했지만, 붓을 쥐고 있던 난 네 몸속 질병에서 비롯된 「진실」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오래 생각한 끝에 완전히 건강한 널 그리기로 했어——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지치지 않는 건강한 몸, 아무리 생각해도 아프지 않은 머리, 먼 곳까지 여행하며 온 우주를 볼 수 있는 힘… 이 모든 걸 네게 그려줄게. 지금 보니 난 선견지명이 있는 같아. 이 그림만 있으면 네가 병이 나아서 복학할 때, 내가 그 누구보다 먼저 너를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제 내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어. 학교에서 너랑 엄청 닮은 사람을 본 것 같았거든! 등이랑 신이한테 얘기했더니, 둘 다 네가 아직 요양 중이라면서 날 놀리더라. 「상청, 상청, 너 뭔가 이상해!」 그때 진심으로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너였다면 턱을 괴고 진지하게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해 줬을 텐데. 그게 뭔진 나도 잘 모르겠어. 환조종 같기도 하고, 밤새 그림을 그리다가 본 환각 같기도 해. 어쨌든 세상에 날 믿어줄 사람은 몇 없는데, 넌 그중 하나니까 몰래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거야. 부디 날 비웃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말아 줘. 그 애가 처음 나타났을 때 난 도서실에 있었어.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내 근처에서 가까운 자리를 골라 앉았지——바로 창문 옆자리 말이야. 아직 기억하지? 우린 여름 내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찍 일어나느라 엄청 애썼잖아. 무더운 여름, 매미 소리와 시원한 바람은 거기에서만 흘러 들어왔으니까. 근데 넌 왜 그렇게 열심이었는지 모르겠네. 넌 바람을 쐬지 못하니 결국 거기 앉은 건 항상 나였으니까. 그 후 식당, 운동장, 복도에서도 그 애를 봤어. 그 애가 내 그림이 만들어낸 환조종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어. 왜냐하면 그 애는 너무나도 건강해 보였고, 친구들도 많이 사귄 것 같았거든…. 그림을 그릴 때 내가 구상했던 것처럼 말이야. 난 내가 정말 기쁠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실제로 기쁘긴 했어. 그런데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고, 감히 다가가서 인사를 건넬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그렇게 변한 널 보니 어떻게 해야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 꼭 네가 손에 닿지 않는 목표가 된 것 같았거든…. 난 그냥 상청일 뿐이잖아. 너 말고는 날 「친절한 상청이」라고 칭찬해 줄 사람이 없지. 하지만 난 네가 나아서 완전히 회복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그 허약한 몸이 아니었다면 넌 원래 모두의 주목을 받을 만한 회화 천재잖아. 마지막으로 그 애를 본 건 어젯밤이었어. 그 애는 우리가 함께 산책했던 은행나무 길 위 달빛이 닿지 않는 은행잎 깊숙한 곳에서 사라졌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러자 네가 학교를 떠나던 날이 떠올랐어. 네 작별 인사도 정말 이상했잖아. 「날씨가 정말 좋네」라든가, 「날이 빨리 어두워지네」라든가, 「오늘밤은 달빛이 참 아름답네」 같은 말들이었지…… 백수, 사실 그때 난 네가 언제 돌아올 건지 말해주길 바랐을 뿐이야. 그나저나 떠나기 전에 왜 그렇게 화났던 거야? 네 말대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고!!! 맺음말 나중에 해인 선생님께 그 애에 대해 여쭤봤는데, 해인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시더라. 「네가 정말로 환조종을 만들어낸 건지도 몰라!」 웃음 신께 맹세컨대, 분명 농담이었을 거야. 나는 매년 꾸준히 학년 꼴찌를 지키는 학생인걸! 그나저나 연락처를 안 남기고 가면 어떡해? 편지는 서랍에 넣어뒀으니 다 나으면 읽어봐. 고3 7반, 상청
